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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의 온기와 검은 실의 그림자새벽 다섯 시, 골목 끝의 작은 빵집은 늘 가장 먼저 불이 켜졌다.오븐이 예열되는 소리, 밀가루가 작업대 위에 쏟아지는 소리, 그리고 아직 잠에서 덜 깬 도시의 숨결.그곳에서 민재는 하루를 시작했다. 빵집 알바생이라는 이름이었지만, 사실 그는 반죽의 온도를 손끝으로 읽고, 발효의 시간을 냄새로 가늠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그날도 그랬다.문이 열리고, 검은 후드에 검은 가방을 멘 남자가 들어왔을 때까지는.도윤은 패션 디자이너였다.밤새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해가 뜨기 직전이면 늘 이 빵집으로 흘러들어왔다. 커피보다 빵을 좋아했고, 무엇보다 이 공간의 “사람 냄새”를 좋아했다. 완벽을 강요하는 패션계와 달리, 여기서는 실패한 반죽도, 찢어진 앞치마도 자연스럽게 용서받는 것 ..
2025.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