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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고민 상담일기

욕 이재용

by (구) 미친게이이야기 2025.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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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감정을 미화하지 않고, 판단은 분명하며, 문장은 단단한 ESTJ형 작가 문체로 쓰겠습니다.


---

얼굴에 욕을 하고 싶은 남자

그는 뉴스를 보다가 화면을 멈췄다.
삼성의 이재용이었다.

그 남자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호감이 있었다. 눈빛이 흐리지 않았고, 말투에 쓸데없는 과장이 없었다. 최소한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고 그는 판단했다. 사람을 볼 때 그는 감정이 아니라 기준으로 판단하는 편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한 충동이 올라왔다.
만약 그를 실제로 만난다면, 악수를 하기보다는 얼굴을 보고 욕부터 하고 싶었다.

“이 자리에 있으면, 이 정도로는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 욕은 분노라기보다 점검에 가까웠다.
칭찬은 안도에서 나오고, 욕은 기대에서 나온다고 그는 믿었다.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에게 굳이 말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이 감정을 너무 단순하게 구분한다고 느꼈다. 좋아하면 박수만 쳐야 하고, 존경하면 침묵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는 그런 태도를 비겁하다고 봤다.

존중한다면, 요구해야 한다.
기대한다면, 불편한 말도 해야 한다.
그게 책임 있는 태도라고 그는 결론 내렸다.

그날 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사실 그 욕은 그 남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너도 이 정도에서 만족하면 안 되지 않느냐.”

그 말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잘 살아가고 싶은 사람만이, 잘 사는 사람을 똑바로 본다. 질투로 욕하는 사람은 무시로 끝내지만, 기대에서 욕하는 사람은 끝까지 본다.

그는 다시 뉴스를 재생했다.
화면 속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속으로만 말했다.

잘 되십시오.
다만, 더 잘하십시오.

그것으로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같은 문체와 태도를 유지해 이야기를 더 밀어붙이겠습니다.


---

그는 뉴스를 끄고 불을 켰다.
방은 정리되어 있었고, 불필요한 물건은 없었다. 그는 어지러운 공간을 싫어했다. 생각이 흐려지기 때문이다. 생각은 명확해야 하고, 판단은 지연되면 안 된다고 그는 믿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왜 굳이 욕을 하느냐고.”
“좋게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좋은 말은 상황을 유지시키지만, 불편한 말은 상황을 바꾼다. 그는 변화 없는 존중을 신뢰하지 않았다. 성과 없는 호의는 감상일 뿐이었다.

그는 이재용이라는 인물을 떠올렸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시간, 선택, 책임. 그는 그것을 계산했다. 운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노력만으로 설명되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 오른 이후였다.

그는 성공한 사람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그건 질투가 아니라 기준이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더 많은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내려오는 게 맞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욕을 하고 싶었다.
“거기까지 온 사람이라면, 더 해야죠.”
그 말이 욕의 형태를 띠었을 뿐이었다.

그는 문득 자신의 삶을 떠올렸다.
크게 자랑할 것도, 완전히 포기할 것도 없는 상태. 애매한 위치. 애매한 결과. 그는 그 애매함을 가장 경계했다. 실패보다 나쁜 건 자기합리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도 똑같이 잣대를 들이댔다.
핑계를 만들지 않았고, 위로로 덮지도 않았다. 대신 점검했다.

오늘 할 일을 했는가

책임을 미루지 않았는가

불편한 선택을 피하지 않았는가


그 질문에 “괜찮다”라는 대답이 나오면, 그는 스스로에게도 욕을 했다. 그건 자기혐오가 아니라 관리였다.

사람은 관리하지 않으면 느슨해진다.
느슨해지면 기준을 낮춘다.
기준을 낮추면, 결국 자신을 존중하지 않게 된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만약 정말로 그 남자를 만난다면, 욕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직접적인 욕은 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정확한 말 한마디를 던질 것이다.

“그 자리에 계신 만큼, 더 냉정해지셔야 합니다.”

그 말은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불편함은 무례와 다르다. 불편함은 성장을 요구하는 신호다.

그는 컵에 물을 따랐다.
차분히 마셨다. 감정은 이미 정리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박수를 치는 사람도 아니고, 돌을 던지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기준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결론 내렸다.

미워서 욕하고 싶은 게 아니다.
기대하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욕을 하고 싶다는 건, 아직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잘 되십시오.
그리고, 기준에서 내려오지 마십시오.”

그 말은
그 남자에게도,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같은 밀도와 태도로 끝까지 더 밀어붙이겠습니다.


---

그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했다.
자신이 왜 박수보다 욕에 더 진심이 담기는 사람인지.

박수는 쉬웠다.
아무 책임도 요구하지 않는다. 순간의 호감만 남기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욕은 다르다. 욕은 관계를 전제로 한다. 다시 보지 않을 사람에게는 욕조차 아깝다.

그는 관계 없는 사람에게 무관심했다.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평가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감정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욕을 하고 싶다는 감정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이미 답이었다.

기대하고 있다.

그는 성공한 사람을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라면 저 자리에 어울리는 선택을 하고 있는가.”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더 냉정해졌다.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감정을 줄이고 기준을 앞세웠다. 감정은 흔들리지만 기준은 유지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말한다.
“너무 딱딱하다.”
“좀 유하게 살면 안 되냐.”

그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유하게 산다는 말은 대개 기준을 흐린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는 흐린 기준으로는 어떤 책임도 감당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이재용이라는 이름을 뉴스에서 볼 때마다 같은 생각을 했다.
당신이 나보다 훨씬 큰 자리에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러니 나보다 훨씬 더 정확해야 합니다.

그는 권력을 미워하지 않았다.
권력이 무책임해지는 순간을 경멸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든 불편한 말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문득 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그 남자를 직접 만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감정이 이렇게 선명한 이유는 분명했다.

그 남자는 하나의 거울이었다.
성공이라는 이름의 거울.
그 앞에서 그는 자신의 태도를 점검하고 있었다.

그래서 욕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욕은 상대를 낮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준을 다시 세우기 위한 망치였다. 잘못된 위치에 놓인 못을 다시 박기 위한 힘.

그는 결론을 내렸다.
이 감정은 문제도, 결함도 아니었다.

이건 기대하는 인간의 방식이었다.
존중하되, 숭배하지 않는 태도.
인정하되, 면죄부를 주지 않는 시선.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정리했다.

나는 당신을 좋아할 수 있다.
그래서 더 냉정할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욕도 할 수 있다.

그 욕은 파괴가 아니라 점검이다.
미움이 아니라 책임이다.

그는 조용히 불을 끄며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욕을 하고 싶다는 건,
아직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말은
오늘도,
그 자신에게 가장 먼저 적용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같은 ESTJ식 판단·결론 중심 문체로, 한 층 더 내려가겠습니다.


---

그는 더 이상 이 감정을 설명하려 들지 않았다.
설명은 이해를 구할 때 하는 일이고, 그는 이해를 구할 필요가 없었다. 스스로 납득하면 충분했다.

사람들은 감정을 도덕으로 재단한다.
“욕은 나쁘다.”
“좋아하면 좋게 말해야 한다.”

그는 그 논리가 현실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봤다.
현실에서는 결과가 기준이었다. 말의 온도보다, 말이 만들어내는 변화가 중요했다.

그는 과거를 떠올렸다.
누군가 자신에게 해준 가장 도움이 된 말들은 대부분 기분 나쁜 말들이었다. 그 말들은 위로하지 않았고, 대신 방향을 제시했다. 상처는 남겼지만, 미련은 남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확신했다.
욕을 하고 싶다는 이 감정은 통제 실패가 아니라 기준 유지 본능이었다.

기준은 항상 공격적으로 보인다.
기준은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타협을 인간적이라고 부르지만, 그는 타협이 쌓이면 결국 아무 책임도 남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다시 그 남자를 떠올렸다.
수많은 보고서, 수많은 결정, 수많은 사람의 삶. 그 자리는 동정으로 유지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종종 성공한 사람을 보호 대상으로 만든다.

그는 그 태도가 가장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보호받는 권력은 가장 빨리 썩는다.

그래서 욕을 하고 싶었다.
“그만큼 가졌으면, 그만큼 각오하셔야죠.”

그 말은 친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직했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시 적용했다.
자기 연민을 경계했고, 합리화를 금지했다. 힘들다는 이유로 기준을 낮추는 순간, 그는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면,
누구의 말도 믿지 않게 된다.

그는 그 지점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론을 더 명확히 했다.
이 감정은 교정 대상이 아니다. 관리 대상이다. 방향만 잃지 않으면, 충분히 쓸모 있다.

욕을 던지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 그는 이렇게 번역했다.

“기대하고 있다”

“기준을 낮추지 말라”

“나도 포함해서”


그는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남을 쉽게 미워하지 않는다.
대신 쉽게 봐주지도 않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세상에는 박수를 치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기준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는 그 사람이 되기로 했다.
조용히, 그러나 물러서지 않고.

욕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건,
아직 책임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그는 오늘도 기준을 점검했다.
남을 향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향해서.








알겠습니다.
같은 문체로 마지막까지 밀도 유지하며 더 이어가겠습니다.


---

그는 이제 이 감정을 설명할 단어를 찾았다.
분노도, 애정도 아니었다.
이건 책임 감각이었다.

책임 감각은 늘 불편하다.
편을 가르지 않고, 감정을 달래주지 않으며, 누구도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계속 묻는다. 지금 위치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

그는 그 질문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그를 피곤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피곤하다는 말은 대개 대충 넘어가고 싶은 사람들이 쓰는 표현이라는 것을.

그는 성공을 동경하지 않았다.
성공은 결과일 뿐이었다. 그가 보는 것은 늘 그 뒤였다. 결과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어떤 순간에 타협하는지, 어떤 말 앞에서 침묵하는지.

그래서 성공한 사람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편안함은 경계심을 마비시킨다. 그는 늘 긴장된 상태가 옳다고 생각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더 그래야 했다.

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그는 그 감정을 즉시 수정했다. 욕이라는 형식이 아니라, 점검 문장으로 바꿨다.

“지금도 스스로에게 가장 불편한 선택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이 문장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욕이라는 걸 알았다.
칭찬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이 질문은 아무나 던질 수 없다. 던지는 순간, 자신도 그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자신 역시 그 질문 앞에서 여러 번 멈췄고, 여러 번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도망친 날은 언제나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는 경험으로 배운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확실히 말했다.
나는 욕을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나는 봐주지 않는 사람이다.

봐주지 않는다는 건 미워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선언이다. 그는 사람을 버릴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말이 나온다는 건 아직 관계가 남아 있다는 증거다.

그는 이재용이라는 이름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감정 없이 정확히 정리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는 그 자리를 개인의 인격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로 보았다. 역할에는 기준이 있고, 기준에는 예외가 없다. 그는 그 단순한 구조를 신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생각에 도달했다.
이 감정은 고쳐야 할 문제가 아니다.
이건 그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다.

그는 박수를 치는 쪽에 서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돌을 던지는 쪽에도 서지 않는다.
그는 늘 그 중간, 기준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설 것이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았다.
욕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는 안다. 그건 미움이 아니라 경고라는 걸.

그는 조용히 결론을 내렸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해도 봐주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안다.

그는 오늘도 그렇게 살기로 했다.
감정을 줄이고, 기준을 세우고, 책임을 남기는 쪽으로.

그게 그가 선택한 방식이었고,
그는 그 선택에 대해
단 한 번도 변명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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